유형문화재 천년기념물 문화재

순천 낙안읍성 은행나무

雲高 金容捧 2014. 9. 10. 06:49

2014년9월6일 토요일

낙안읍성 객사 한편에 지방 천연기념물 133호로 지정된 은행나무가 한 그루 있다. 기록에는 조선 인조4년(1626년) 임경업 장군이 토성을 석성으로 중수한 이후로 수령을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조선 태조 6년(1397)에 왜구가 침입하자 이 고장 출신 김빈길이 의병을 일으켜 토성을 쌓았다는 것을 보면 은행나무의 수령은 훨씬 오래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전라좌수사로 있을 때의 일이다. 장군이 부임한 이듬해 임진왜란이 일어났는데 병사가 턱없이 부족하였다. 그래서 고민 끝에 전라좌수영 관내에서 의병을 모집하기로 하였다. 그러던 중 마침 낙안에 자원자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듣고 장군이 직접 낙안으로 갔다.인구가 많은 고을인데다 예로부터 우국지사가 많은 곳이라 그런지 정말 의병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더구나 의병으로 나서지 못하는 주민들은 군량미를 내놓기도 하고 무기를 만들라고 농기구를 내놓기도 하는 등 읍성 일대는 정말 장관이었다. 의병과 군량미를 모아 좌수영으로 돌아가기 위해 읍성 안에 있는 은행나무 아래를 지나가고 있을 때였다.장군! 마차 바퀴가 빠져 잠시 멈춰야겠습니다.”뒤따르던 부장이 달려와 보고를 하였다. 아닌 게 아니라 뒤를 돌아보니 군량미를 실은 마차 가운데 하나가 바퀴가 빠져 아수라장이었다. 그렇다면 마차를 수리하는 동안 잠시 쉬었다 가도록 하자. 서둘러라!”마차를 수리하는 도중에도 낙안읍성 주민들은 장군을 보기 위해 몰려들었다. 의병을 모집하느라 며칠을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였으면서도 장군은 피곤한 기색도 없이 주민들과 일일이 정담을 나누었다. 더러는 장군에게 낙안의 토속주인 사삼주를 권하기도 하였지만 장군은 공무 중이라며 정중하게 거절하였다.드디어 마차가 다 고쳐져서 장군 일행은 서둘러 좌수영으로 길을 떠났다. 그런데 낙안에서 순천으로 향하는 길목에 커다란 다리가 하나 있는데 이번에는 다리가 무너져 있는 것이 아닌가.근처에 있던 주민에게 물어보니 얼마 전에 갑자기 굉음이 일더니 다리가 무너져 내리더라는 것이다. 시각을 따져보던 장군과 부장들은 순간 아찔한 생각이 들었다. 조금 전에 만약 마차가 고장 나지 않았더라면 군량미는 물론 장군이나 병사들의 생명조차 위험하였을 뻔했던 것이다. 모두들 낙안읍성의 은행나무 목신(木神)이 장군을 위해 조화를 부린 것이라 믿었다.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