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문화재 천년기념물 문화재

남원 성암정

雲高 金容捧 2014. 9. 6. 05:13

2014년8월29일 금요일

성암정은 1500년대 중엽 남원군 대산면 죽곡리에서 태어나 이곳 입암마을로 이사온 성암 신각(申覺)을 기리기 위해 1919년에 후손들이 정성을 들여 지은 정자이다. 신각선생은 일찍이 사마시에 합격하여 하서 김인후 선생의 문하에서 공부를 했다. 그는 성리학을 깊이 공부하여 공자의 제자인 자유와 자하의 문학과 덕행에 뛰어난 염유와 민가건을 겸하였다고 한다. 사실 성암이라는 호도 자사가 말한 솔성(率性)이라는 가르침과 맹자가 강조한 지성(知性)의 성(性)자를 따서 지은 것이다. 이에 그의 사상과 생활철학을 접할 수 있는 유고가 후손에게 많이 전해졌는데, 아쉽게도 화재로 인하여 유실된 것은 큰 불행이라 할 것이다. 그 후 공의 9세손인 세균·원균·태균이 주축이 되어 선조인 신각의 유업을 잇고자 성암정을 1919년 건립하게 된다. 후손들은 그 어려웠던 일제 강점기에 이십리가 넘는 먼 거리인 전남 곡성에서 목재를 금지면 입암마을까지 가지고 오는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았다. 아녀자들은 섬진강 나루터까지 밥을 지어 날랐고, 후손들은 물속에서 소나무와 시름하는 것을 즐거움으로 여겼다. 정자는 특이하게 가운데 방이 하나있어 겨울이면 비바람을 피할 수 있도록 만들었고, 삼면의 마루에는 여름에 학생들이 학습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했다. 정자 안에는 석촌 윤용구가 쓴 성암편액이 있고, 신좌희의 성암정기, 김영한의 성암기, 하서선생시 등이 걸려있다. 그러나 성암정은 세월의 무게를 견딜 수 없어 피폐해지자, 2000년 다시 성암정친목회에서 중수를 결의해 많은 어려움 끝에 2005년 준공을 하게 된다. 새로 지은 정자에는 전북대 김병기교수의 성암정 편액과 주련글씨가 송림과 어우러져 멋을 더해내고 있다. 성암정편액은 전서에 금문의 필의를 가미하였고 주련글씨는 고구려 광개토대왕 필의가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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