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여행(旅行)

의령 곽재우장군 생거지

雲高 金容捧 2019. 1. 31. 06:06

2019년1월11일 금요일

진주 동쪽에 의령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풍속조에 습속이 굳세고 사납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하연이 기문에서 푸른 강과 넓은 들 높은 둔덕과 무성한 숲이 있다”라고 노래했던 의령은 신라 때의 장함현(獐含縣)으로, 경덕왕 때 지금의 이름으로 고쳤다. 어변갑이 그의 시에서 정암진 봄물은 비단을 펼친 듯 산뜻하다 라고 했듯이 북쪽으로는 산을 두르고 남쪽으로는 들판과 강을 낀 의령군을 풍수지리에서는 훌륭한 명당자리로 보아 부자가 많이 나온다는 속설이 전해져온다.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삼성 그룹을 창업한 이병철과 엘지 그룹을 창업한 구자경 등이 이곳에서 태어났다 1552년 의령군 유곡면 세우리에서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동한 곽재우가 태어났다. 곽재우는 그의 스승이자 영남 유학의 거봉인 남명 조식의 외손녀와 혼인하고 35세 때 과거에 합격하였으나 벼슬에 나아가지 않은 채 고향에 돌아와 지냈다. 40세 때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집안의 하인 열세 명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다. 그는 집 느티나무에 북을 매달고 치면서 본격적으로 의병을 모았고, 그해 6월 말에는 정암나루 부근 솟대바위에서 왜군과 맞서 싸워 크게 이겼다. 곽재우는 항상 붉은 옷을 입고 싸움에 임했으므로 홍의장군이라고 불렸다 임진왜란 때 세운 공을 인정받아 경상좌방어사로 재직하던 곽재우는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창녕의 화왕산성에서 왜구와 맞섰고 그 싸움에서 왜군 수천 명을 무찔렀다. 난이 끝난 뒤에 당쟁에 휘말린 조정에 상소를 올려 어지러운 나라를 바로잡으려 애썼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조정에서는 그 후 여러 차례 벼슬을 내렸지만 곽재우는 고양이는 쥐만 잡으면 할 일이 없다 라며 창녕군 도천면 우강리로 돌아와 지내다가 숨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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