읍성(邑城) 산성(山城))

나주읍성(사적 제337호)

雲高 金容捧 2018. 2. 23. 05:47

2018년2월9일 금요일

나주시성북동, 과원동, 서내동, 금남동, 남내동에 있는 고려시대 읍성으로 1990년 10월 31일 사적 제337호로 지정되었다 면적은 1만 4,852㎡이다. 고려시대에 쌓은 성으로 조선 세조 3년(1457년)에 성을 확장했고 임진왜란(1592년) 이후에 대대적인 보수 공사가 있었다 돌을 쌓아 만든 것으로 둘레는 3,126척(약 940m), 높이는 9척(약 2.7m)이며 대포을 쏠 수 있는 성벽에 나온 포루가 3개이고, 우물이 20여 개 있었다고 한다. 성문은 4개로 동·서·남·북에 있었으나 모두 없어지고 북문터에 기초석만 남아있는것을 복원 하였다 나주읍성은 뒤쪽에 자리한 금성산성(錦城山城)과 짝을 이루는 성곽으로, 우리나라 읍성 가운데 규모와 역사가 가장 크고 오래된 읍성이자 평지에 네모꼴의 모습으로 축조된 대표적인 읍성으로 알려져 있다 나주는 호남의 천년고도다 '전주'(全州)와 '나주'(羅州)의 머리글자를 따 전라도라는 이름을 지었듯이 나주는 고려 성종 때 목(牧)으로 지정된 이후 구한말까지 1천여 년 동안 호남의 행정·경제·군사·문화 중심지였다. 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300여 명의 목사(지방관)가 파견됐고, 조선 후기에는 곡식 세금이 전국 1위, 인구는 5위를 차지했다. '천년목사 고을'로 불리는 이유다

 

 

 

 

 

 

 

 

 

 

 

 

남고문은 1993년 남문터에 복원되였다 2층으로 된 누(樓)는 앞면 3칸·옆면 2칸이며 지붕은 화려하다 옆에서 보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되어있어 옛 나주읍성의 일부분을 보여준다

 

 

 

 

 

 동점문은 4대문 중 동쪽에 우뚝 서 있는 성문으로 동점이란 명칭은 '동쪽으로 점점 흘러 바다에 이른다'는 뜻으로 서경(書經)에서 유래됐다. 읍성을 가로지르는 나주천이 서에서 동으로 흘러 영산강을 만나 바다에 이른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동점문은 옹성이 설치된 2층 문루다. 홍예문식 성문의 바깥에 'ㄱ' 자 모양의 옹성을 둘러쳐 방어력을 높였다. 읍성 바깥쪽에는 목책을 이중으로 세웠다. 일제 강점기에 훼손되어 사라졌다가 2006년 당시 모습으로 복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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