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의 서원(書院)

진도 운림산방

雲高 金容捧 2015. 3. 13. 08:30

2015년3월10일 화요일

전남 진도군 의신면 운림산방로 315 운림산방은 진도군 의신면에 있는 조선 후기 남종화의 거봉이었던 소치 허련선생의 화실로 명승 제 80호로 지정 되였다 허련 (許鍊)조선 후기의 서화가. 추사 김정희의 제자. 글, 그림, 글씨에 모두 능하여 삼절(三絶)이라 불림. 스승을 따라 추사체를 쓰기도 했다. 《하경산수도》 등의 작품이 있다.본관 양천(陽川). 자 마힐(摩詰), 호 소치(小癡)·노치(老癡). 1808년 2월 7일 전남 진도에서 허각의 5남매 중 장남으로 출생. 이름은 허련(許鍊)이었으나 후에 허유(許維)로 개명하여 부르기도 하였다. 그의 이름을 두고 허유였다가 허련으로 변경하였다는 설이 있지만 허씨대종보에는 련(鍊)으로 기록하고 있다. 1839년 32세 때 초의선사의 소개로 서화를 추사 김정희에게 보였다가 작품의 솜씨에 감복한 추사의 부름을 받고 한양으로 갔다. 허유는 한양에 머물면서 추사의 문하생이 되어 사사를 받았다.1840년 추사가 제주도로 유배를 가게되자 해남까지 배웅하였고 이듬해 제주도로 건너가 서화수업을 받았다. 1843년 제주 목사 이용현의 도움으로 추사의 적거지를 왕래하며 서화를 익혔다. 1846년 한양으로 돌아와 헌종에게 《설경산수도》를 바쳤고 극찬을 받았다. 1847년 세번째 제주도를 방문하여 스승 추사를 찾아뵈었다. 1856년 추사가 타계하자 고향 진도로 낙향하여 운림산방을 짓고 정주. 1866년 상경, 1877년 70세에 흥선대원군을 만났으며 대원군은 그를 두고 "평생에 맺은 인연이 난초처럼 향기롭다(平生結契其臭如蘭)"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1887년 벼슬은 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 1893년 9월 6일 86세를 일기로 사망. 글·그림·글씨를 모두 잘하여 삼절로 불렸으며 그 중에서도 특히 묵죽(墨竹)을 잘 그렸다. 글씨는 김정희의 글씨를 따라 화제에 흔히 추사체(秋史體)를 썼다. 작품으로 《하경산수도(夏景山水圖)》 《추강만교도(秋江晩橋圖)》 《만산묘옥도(晩山茆屋圖)》 《산교청망도(山橋淸望圖)》 《동파입리도(東坡笠履圖)》 《산수병풍(山水屛風)》 《산수도》 《노송도병풍(老松圖屛風)》 《묵해도(墨海圖)》 《괴석도쌍폭(怪石圖雙幅)》 《포도도(葡萄圖)》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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