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9월20일 금요일
정충사는 순천시 저전동에 있는 조선시대 의병장인 장윤의 사액 사우로 순천시 저전동 뒷산의 하단 경사지에 동향(東向)으로 자리하고 있다. 사우 전면으로는 주택가가 형성되어 있고 우측으로는 바로 담장을 사이에 두고 태사묘(太師廟)가 있다. 신좌을향(辛坐乙向)으로 자리 잡았다 1682년(숙종 8)에 순천의 유림이 중심이 되어 정충사(貞忠祠)를 건립하여 장윤을 배향하였다. 1685년에 유생 조필문(趙弼文) 등이 청액소를 올려 1686년(숙종 12)에 사액을 받아 ‘정충사(旌忠祠)’라 하였다. 1810년(순조 10)에는 순천부사 조진화(趙晉和)가 「정충사우기」를 지었다. 1868년(고종 5) 서원철폐령에 따라 훼철되었다가 1907년 장현석 등이 복설하였고 1946년 중수하였다. 1972년 단청을 하였고, 1978년에 외삼문을 중건하였다 정충사는 2005년 7월 13일 전라남도 기념물 제232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전라남도 기념물로 재지정되었다. 순천정충사의 운영과 관련된 『정충사보부록(旌忠祠寶裒錄)』[1682], 『순천부 교원집강(順天府校院執綱)』[1811], 『심사록(尋祠錄)』[1827], 『절목(節目)』[1865] 등 17세기부터 20세기에 이르는 자료들을 보존하고 있다
장윤(張潤)[1552~1593]은 1582년(선조 15) 무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있던 중 부친의 병환으로 낙향했다가 사천현감으로 복직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순천에서 의병을 일으켜 전라좌의병 부장(副將)으로 활동하였다. 1593년 6월 진주성을 다시 공격하자 이를 사수하기 위해 진주성으로 출동하였다. 당시 일본군의 기세에 눌려 진주목사 이하 장수들이 도주하자, 비분강개한 장윤은 충청병사 황진(黃進), 경상우병사 최경회(崔慶會), 창의사 김천일(金千鎰) 등과 함께 10배 이상 많은 일본군과 힘을 다해 싸우다 순절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