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3월5일 토요일
바이욘 사원은 12C후반 - 13C초 사이에 지어졌고, 불교 사원으로 지어졌습니다. 당시 왕이었던 자야바르만 7세는 최초로 대승불교를 들여왔고, 스스로를 중생을 구제하는 로케쉬바라( 관세음보살)로 믿고, 대승불교를 장려하기 위하여 갖가지 사원과 빈민구제시설 등을 많이 지었다고 전합니다.바이욘 사원 탑에는 관세음보살의 모습을 한 자야바르만 2세의 웃는 얼굴이 새겨져 있는데, 이는 부처와 동일시된 왕의 위력을세계에 과시하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화랑의 벽면에는 그 당시 크메르인들의 역사적 사건과일상생활의 부조로 새겨져 있다. 건설 직후의 바이욘은 황금빛으로 찬란하였다고 합니다. 바이욘사원은 수수께기에 싸인 사원으로, 아직까지 무엇을 의미하는지가 정확히 알려져있지를 않습니다. 이 바이욘 사원은 앙코르 톰의 중심에 있어, 많은 사람들이 바이욘사원은 크메르 우주론의 메루산를 상징한다고 합니다역사적으로 본다면 자야바르만 7세는 정통후계자가 아님 방계이었는데, 이런 그가 정치적으로 기존의 계급제도를 인정하는 힌두교보다는 백성들을 대상으로 직접 정치를 하는 과정에서 대승불교를 들여오고 스스로를 관세음보살로 자칭하면서, 대승불교를 권장하는 한편 많은 빈민구제 시설들을 건설하지 않았을까 추측해 볼 수도 있습니다. 그는 바이욘 사원, 앙코르 톰, 프레아칸, 닉뽀안, 따 프롬 등 많은 사원을 모두 세웠고, 또 1200년대 초 앙코르 왕국을 괴롭혔던 베트남의 참파국을 복속시켰고, 태국 북부 지역도 다스렸으며 라오스의 브양트얀 부근에서도 그의 비문이 발견될 정도로 세력을 확장했었습니다. 정확한 국경선을 밝혀지지 않았지만 상당히 넓은 지역을 통치했으며 그것을 가능케 한 것이 끝없이 뻗어나간 도로였습니다. 자야바르만 7세는 탁월한 군사력, 정치력, 그리고 자신을 관세음보살과 일치시키며 신격화시킬 정도로 능력있는 왕이었으며 앙코르 왕국을 번영시킨 위대한 지도자였으나, 이런 그의 치세도 그가 죽고 나자 사그라들고, 종교는 다시 힌두교로 바뀌며, 국력은 급격하게 쇠퇴하게 되었습니다. 급기야 15세기 중엽에는 지금의 꼼뽕 츠낭으로 도읍을 옮기면서 앙코르 제국의 영화는 막을 내리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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