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문화재 천년기념물 문화재

화순운주사지(사적 제312호)

雲高 金容捧 2015. 4. 15. 12:06

2015년4월12일 일요일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대초리·용강리에 있는 고려시대의 절터로

면적 49만7088㎡. 사적 제312호로 지정면적 497,090㎡. 나지막한 야산협곡의 분지에 위치한 운주사지에는 반경 200m 범위내에 석불 70여 구와 석탑 12기가 유존하고 있다.통일신라 말 도선(道詵)이 하룻밤 사이에 천불천탑(千佛千塔)을 쌓았다고 전하나 이에 대한 확실한 사료는 없고, 다만 《신증동국여지승람》 능성현조(綾城縣條)에 “雲住寺在千佛山寺之左右山背石佛塔各一千……(운주사재천불산사지좌우산배석불탑각1천……)”이라는 내용이 보인다 또, 1632년(인조 10)의 《능주목지 綾州牧誌》에도 이와 비슷한 기록이 보이고 있는데, 후미의 “雲住寺今廢(운주사금폐)”라는 기록으로 보아 1632년 이전에 한 차례 폐찰되었던 것 같다.1984년 발굴조사 때 새로운 건물지와 각종 기와조각과 자기조각 등이 출토되어 운주사의 창건은 물론 천불천탑 조성을 규명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이때의 출토유물은 고려초의 햇무리굽청자조각(2개)·순청자접시조각(20여개), 그리고 금동여래입상(金銅如來立像)이다.이 유물의 연대가 10, 11세기경으로 추정되어, 운주사의 창건이 고려 초기로 소급되고 있음이 밝혀졌다. 또 고려 중기의 상감청자 약 100여 조각, 14, 15세기경의 청자류 350여 조각이 출토됨으로써 운주사가 고려 중기에서 말기까지 매우 번창하였던 사찰이었음을 입증하였다.특히, 홍치8년명(弘治八年銘, 1495)의 기와조각 출토는 운주사가 15세기 말에 크게 중창되었다가 그 뒤 정유재란으로 인하여 폐찰되었음을 알게 하였다.운주사가 고려 중기 이후 번창하였음은 현존 유적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는데, 이곳에 산재한 석불·석탑이 12세기경의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데다 고려시대의 지방적인 특색이 가장 잘 남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운주사지는 불교미술사 또는 불교사 연구에 매우 중요한 예로 평가되고 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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