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문화재 천년기념물 문화재

고창 도산리 고인돌(세계유네스코등재 제2444호)

雲高 金容捧 2015. 3. 16. 06:24

2015년3월15일 일요일

지석묘는 자연석을 사용하여 지상 또는 지하에 매장시설을 만들고, 지상에 큰 돌을 윗돌[上石]로 놓아 덮개돌[蓋石]로 사용하고, 그것으로 동시에 유력자의 무덤임을 표지로 삼은 한반도 특유의 묘제(墓制)고인돌은 청동기시대(靑銅器時代)에 성행하여 초기철기시대(初期鐵器時代)까지 존속한 거석문화(巨石文化)의 일종이며, 고대국가(古代國家) 발생 직전의 사회상을 표현하고 있다. 고인돌은 지역에 따라 호칭이 다른데, 한국과 일본에서는 지석묘(支石墓), 중국에서는 석붕(石棚), 구라파 등지에서는 돌멘(Dolmen) 등의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2000년도에는 강화의 부근리·삼거리·오상리의 약 120여 기(基)의 고인돌군, 고창 상갑리·죽림리 등 고창군 전역 205군집(群集) 총 1,665기의 고인돌, 화순 효산리·대신리의 고인돌 500여 기 등이 세계문화유산(世界文化遺産)으로 등재되어 전 세계적인 관심 속에 보존·관리되고 있다.고인돌이라는 무덤은 어디서 왔을까? 즉, 고인돌의 기원에 관한 견해는 2∼3의 학설이 제기되어 있다. 첫째는 한반도 자생설(自生說)로서 석관묘가 지상화(地上化)하여 고인돌이 되었다고 보는 학설이다(김원룡). 이 설은 거대한 상석이 석관묘와 결합된 과정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둘째는 요녕(遼寧) 지방의 대석개묘(大石蓋墓)·석개석관묘(石蓋石棺墓)·석개석곽묘(石蓋石槨墓)·석개토광묘(石蓋土壙墓) 등이 제단지석묘와 결합하여 이루어졌다는 학설이다(이영문). 이 설은 요녕 지방의 석개묘들이 지상화하는 과정과, 그것들의 연대가 한반도의 고인돌보다 선행한다는 전제조건이 증명되어야 한다. 결국 앞의 두 설을 합하여 정리하면, 석관묘의 개석이 지상화 하면서 제단의 기능이 결부되어 거대한 암석으로 대체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도 불안한 요소가 있다. 즉 그것은 구라파, 동남아, 중국 동해안 지방의 고인돌과의 관계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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