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여행(旅行)

영암 상대포

雲高 金容捧 2015. 3. 1. 04:40

2015년2월27일 금요일

영암 구림마을 상대포는 먼 옛날부터 중국의 선진 문화가 유입되고 무역의 중심지로 뱃길이 오갔던 국제무역항이었습니다 신라 최치원 선생님께서도 당나라로 유학가실때 상대포에서 떠나셨다는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왕인박사님께서 천자문과 논어를 가지고 여러 기술자들과 함께 일본으로 떠나셨던 포구입니다 지금은 넓은 포구는 간척을하여 넓은 들녁으로 바뀌고 영암군에서는 역사공원으로 조성하여 관광객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왕인(王仁)박사가 A.D 405년에 일본으로 떠났다고 전해지는 포구로서 삼국시대 중국과 일본을 잇는 국제항구였다. 왕인(王仁)에 관한 기록은 「日本書紀」와「古事記」에 전해지고 있다. 특히 「古事記」에는 논어 10권 천자문 1권 대장장이 베짜는 사람과 함께 왔다는 내용이 자세히 실려 있다.

 

 

 

 

 

 

 

 

 

영암 정원명 석비 (靈巖 貞元銘 石碑) - 문화재자료 181호 (1990.12.05. 지정)

전남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 776-7

비의 성격을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비문의 일부 내용으로 보아 불교와 관계된 것으로 짐작되는 비이다. 자연석을 약간 다듬은 기둥 모양으로 앞면에만 글자를 새겼는데 많이 닳아 있어 전체적인 내용 파악은 어렵다. 비문에 의하면 비의 건립연대는 통일신라 원성왕 2년(786)이다. 전남지역에서 발견된 글을 새긴 비중에서 가장 오래된 비로, 마을에서 골목길을 정리하다 발견되어 지금은 최정호씨 집에 옮겨 놓았다. 글자수는 총 42자로 현재 파악된다.정원이년내인오월십일자평행향장내불망 貞元二年內寅五月十日자坪行香藏內不忘 입처유주범세구합향십속 立處有州梵歲口合香十束 입구오인명력지언생우 入口五人名力知焉生右 인개 仁開

문화재청 설명을 보자."당나라 연호인 정원 2년은 786년(통일신라 원성왕 2)이다. 내용은 아직 전체적으로 파악되지 않아 확실한 성격은 규명할 수 없다.행향·향장 등은 불교와 관계된 해석으로 추측된다고 한다. 비문이 불교적인 요소가 확실하다면지금까지 영암에서 도선국사 생존연대(827∼898년)이상 상한하는 불교문화 예가 없는 점에서 매우 주목되는 석비가 아닐 수 없다. 문화재청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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