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3월21일 수요일
영산 만년교는 보물제 564호로 예전 있던 나무다리가 큰물에 자주 떠내려가자 조선 정조 4년(1780) 영산의 백성들이 힘을 합쳐 돌을 떠다가 놓았다고 한다 그때 영산에 사는 김윤관(金允寬)이란 사람이 일을 주선하고 백진기(白進己)란 석수가 다리의 축조를 담당하였다. 말하자면 순수하게 백성들의 손으로 이루어진 다리인 셈이다. 아마도 다리가 주는 꾸밈없고 서민적인 인상도 이런 데서 연유한 듯싶다 그 뒤 고종 29년(1892) 만년교를 중건하였는데, 이때는 현감 신관조(申觀朝)가 일을 주관하고 현풍에 사는 김내경(金乃敬)이 돌 다루는 일을 맡아했다고 한다. 북편 다리 입구 양쪽에 서 있는 남천석교비(南川石橋碑)와 석교중건비(石橋重建碑)에 이런 내용들이 씌어 있다 다리 남쪽 입구에도 비가 하나 서 있다. 비에는 큰 글씨로 ‘萬年橋’(만년교)라 새겨져 있고, 그 끝에 ‘十三歲書’(십삼세서)라는 작은 글씨가 덧붙여 있다. 전설이 깃든 글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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