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여행(旅行)

철원 고석정

雲高 金容捧 2020. 2. 3. 05:25

2020년1월12일 일요일


고석정()은 철원팔경 중 하나이며 철원 제일의 명승지로 꼽힌다. 한탄강 한폭판에 치솟은 10여m 높이의 거대한 기암이 천연덕스럽게 우뚝 솟아 있고, 그 양쪽 허벅지쯤으론 옥같이 맑은 물이 휘돌아 흐른다. 여기에 신라 진평왕 때 축조된 정자와 고석바위 주변의 계곡을 통틀어 고석정이라 한다. 기암이 외따로 강심에 잠겨 있는 탓이었을까. 아무리 보아도 장엄할지언정 외롭지는 않아뵈는데 절벽바위 이름을 외로울 ‘고’자 고석()이라 했으니 선인들의 자연을 보는 눈썰미가 매섭다 고석정은 지방기념물 제8호로 지정된 고석정은 신라 때 진평왕이, 고려 때는 충숙왕이 찾아와 노닐던 곳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보다 더 유명해진 까닭은 조선시대 의적으로 불린 임꺽정(, ?~1562)의 활동·은거지로 알려지면서이다. 그런데 알 수 없는 것은 벽초 홍명희의 소설 『임꺽정』에는 고석정에 관한 언급이 한마디도 없다는 사실이다. 지금도 이 고장 사람들은 고석정을 꺽정바위로 부르며 고석정의 형상이 마치 임꺽정이 신고 다니던 장군화를 닮았다고 믿고 있어 흥미롭다 양주()의 백정 출신 임꺽정은 의기가 있고 뜻이 굳어 일찍이 국정()에 맘을 두었으나 신분이 천민이어서 뜻을 펼 수 없었다. 울분을 삭이지 못하던 임꺽정은 당쟁으로 조정이 어지럽고 사회기강이 혼란스럽던 1559년(명종 14)부터 대적당()을 만들어 동지들을 규합하고 두목이 된다 그로부터 3년 동안, 1562년까지가 임꺽정의 활동이 가장 활발했던 시기이다. 황해도 구월산과 서흥·신계를 중심으로 이 지역의 관청이나 토호·양반집을 습격하여 재물을 빼앗았다. 함경도와 황해도 방면의 곡물이 조정으로 운반되는 길목에 성을 쌓고 진상품을 약탈, 서민들에게 나눠주었으며, 약탈한 물건을 서울이나 개성 등 다른 지역으로 가지고 가 팔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