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문화재 천년기념물 문화재

영주 비로사 삼층석탑

雲高 金容捧 2017. 6. 2. 07:39

2017년5월31일 수요일

석탑은 석조탑파(石造塔婆)를 줄인 것으로 석가모니의 사리(舍)를 봉안하기 위한 축조물로 서찰에서 세운 건축물이다 석가모니의 열반 후 제자들은 유해를 당시 사회의 풍속에 따라 다비(茶毘)를 하였다. 이때 인도의 여덟 나라에서 이 사리를 차지하기 위한 쟁탈이 일어나게 되자 도로나(徒盧那)의 의견에 따라 불타의 사리를 똑같이 여덟 나라에 나누어 주어 각기 탑을 세우니, 이를 ‘분사리(分舍利)’ 또는 ‘사리팔분(舍利八分)’ 이라고 하였다. 이때부터 사리신앙이 싹트기 시작하였으며, 이로써 사리를 보관하기 위한 불탑이 등장하게 된다. 석가모니가 입멸한 지 100년이 지나 마우리아(Maurya)왕조의 제3대 아소카왕(Asoka, 서기전 273∼232)은 불사리를 안치한 8대탑을 발굴하였고, 발굴된 불사리를 8만 4000으로 나누어 사리탑을 전국에 널리 세워 불교를 크게 전파시켰다 최초의 탑은 반구형(半球形)이었으나, 후대로 내려오면서 그 밑에 높은 기단을 만들어 탑신을 받치고, 상륜(相輪)의 수효가 늘어나는 한편 주위에 돌난간을 둘러 아름다운 조각을 새겨 장식하였다. 시대가 내려갈수록 점차 기단부, 탑신부, 상륜부의 세 부분으로 구성된 전형적인 탑형식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탑파의 건립 경로는 중국을 거쳐 4세기 후반에 시작되었다. 그러나 탑의 양식은 인도, 중국과 다른 독특한 특징을 가지며 이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