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여행

중국 호장산성(박장성)

雲高 金容捧 2015. 7. 11. 08:09

2015년7월6일 월요일

단동시 북쪽에서 약 30km떨어진 압록강변에 있으며 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의 우적도와 의주군을 바라볼 수 있다. 호산장성은 1469년에 건설되어 400여 년의 사회변혁을 거치고 대자연의 비바람과인위의파괴로 인하여 면모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되었다. 만리장성의 동쪽 끝부분이다.압록강과 얘하의 합류지점에 위치한 압록강국가급 명승구의 핵심 관광구의 하나로서 단동시에서 30km 떨어져있다. 삼면이 물에 쌓인 홀로 솟은 산봉우리인데 누워있는 호랑이 같아 호산이라 일컫는다. 최고봉 146m이다.1990년부터 1993년에 이르기까지 문물과 고고학자들의 조사와 검정을 거쳐 700m의 성벽과 봉화대, 군사영방 등 유적들을 발굴하였다. 그 이후에 2차례를 거쳐 장성의 수복공정을 진행하였다 고구려 박작산성" 으로 알려지며, 정상에 서면 북한마을이 내려다보인다. 1990년대에서 중국에서 중국성 형태의 성을 새로 만들어서 만리장성의 동단이라 주장하고 있는 동북공정의 장소이다. 바로 옆이 압록강의 하중도인 우적도(북한)와는 작은 개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어 이곳을 일보과(一步跨)이라고 하며, 분단의 한을 생각나게 하는 곳이기도 하다 압록강의 상류로부터 하류로 흐르는 중 가장 가까운 곳은 거리가 불과 1 m 밖에 되지 않아 북한병사와 1m 두고 접할 있는 유일한 곳이다호장장성(虎山長城)은 단둥시 말로 만리장성의 시작점이고, 실제 중국에서 인정하는 만리장성의 시작은 동쪽 진황도에 있는 '산해관(山海關)'이다. 10년 전부터인가 단동시 정부에서 꾸준히 만리장성의 시작점이라고 홍보를 하고 있긴 하지만 그건 지방방송일 뿐 이다.단동시에는 호산장성이라 하지만.. 실제로는 고구려의산성"박작성"이라 한다.보장왕 7(648) 당나라가 쳐들어 왔을 때 '박작성은 산을 이용하여 요새를 세웠고, 압록강으로 튼튼하게 막혀 있었기 때문에 함락시키지 못하였다'는 기록이 있다.지금까지 압록강 입구에서 발견된 고구려 성은 애하첨고성과 이 호산산성 뿐인데 유일한 산성인 호산상성이 박작성인 것을 생각된다<< 호랑이쌍봉>> 옛적부터 <<안동팔경>>의 하나였다역사가 유구한 호산은 한나라 때 서안 평현에 속하는중요한 의의가 있는 전략 요충지였는데 1894 갑오전쟁과 1904 러일 역사유적이 지금도 남아 있다.<<명사,병지>> 만리장성은 <<동쪽 압록강에서 시작되어 서쪽 가욕에 이르렀다>> 고고학적 기록되어 있다.고고학자들의 현지발굴에 의하면 중국만리장성 도단의 기점이 단동 호산이다.역사상에서 진한과 명조가 대규모적인 장성수축사업을 세차례 진행하였다. 명나라 성화 5 (기원 1469) 녀진인의 서쪽으로 중원에 대한 침입을 막기위해 변장을 수축 했었는데 그것이 명장성이다. 호산을 당시에 료동 1관으로 칭하였다.10여년 전 중국 학자들이 애하첨고성 동쪽에 있는 호산(虎山)에서 명나라 장성을 찾다가 고구려 산성을 하나 찾아냈는데 이 성이 바로 고구려 박작성으로 알려졌다. 보장왕 7(648) 당나라가 쳐들어 왔을 때 '박작성은 산을 이용하여 요새를 세웠고, 압록강으로 튼튼하게 막혀 있었기 때문에 함락시키지 못하였다'는 기록이 나온다. 지금까지 압록강 입구에서 발견된 고구려 성은 애하첨고성과 이 호산산성 뿐인데 애하첨고성은 평지에 쌓은 성이기 때문에 유일한 산성인 호산산성이 박작성이 되는 것이다. 1998 7월 말, 호산에 도착해 보니 고구려산성은 보이지 않고 최근 중국이 복원한 어마어마한 명나라 장성이 앞을 가로막는다. 몇 년 전 일본 방송국에서 제작한 [만리장성]이란 프로에서 만리장성의 동쪽 끝을 잠깐 보여준 것은 만리장성이 아니라 고구려산성이었다.

그리고 불과 몇 년 사이에 갑자기 명나라 장성이 등장한 것이다. 어려운 경제사정 아래서도 중국이 압록강 가에 대규모 장성을 새로 복원한 것은 이민족인 청나라의 지배를 벗어나 오히려 그 땅을 지배하고 있는 현실을 정당화하기 위한 강력한 의사표현과 같은 것이다. 기록에는 이 장성 끝 어디에 고구려 산성이 남아 있다는데 아무리 찾아보아도 보이지 않고 새로 쌓은 명나라 장성만 괴물처럼 버티고 있다. 끈질기게 수소문한 끝에 고구려 산성은 현재 명나라 장성을 복원해 놓은 산 뒤쪽, 다시말해 압록강 쪽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트럭을 타고 애강가 둑을 달려 조그만 마을에 닿아 옥수수 밭을 한참 동안 헤치고 가자 드디어 호산산성이 나타났다. 고구려 이후 1300년이 지나도록 땅속에 묻혀 있던 산성유적이 발굴된 것은 1991 9월부터 12월까지 3개월간이었다. 그러니까 필자도 1998년에야 처음 대하게 된 고구려 유적이고 산 고구려 유적에 대한 한내 첫 발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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