읍성(邑城) 산성(山城))

강화 창후리 무태돈대

雲高 金容捧 2015. 4. 22. 07:09

2015년4월17일 금요일

인천광역시 강화군 화도면 창후리 산 151-24 외 1필지 1999년 3월 29일 인천광역시문화재자료 제18호로 지정되었다. 병자호란 뒤, 강화도 해안지역의 방어를 튼튼히 하기 위하여 해안선을 따라 축조한 강화 53돈대 중 하나로, 1679년(숙종 5)에 강화유수 윤이제()가 어영군() 2,000여 명과 경기·충청·전라 3도 승군() 8,000여 명을 동원하여 쌓았다. 강화도의 돈대는 53개 중 49개가 병자호란 43년 후인 숙종 5년에 지었다.조선시대 때, 성곽이나 변방() 요지에 세워 적의 움직임을 살피거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하여 마련한 초소인 돈대()는 주변보다 높은 평지에 쌓는데, 밖은 구릉을 깎아서 높게 하여 적의 침입을 막고 안은 낮게 하여 포를 설치하였다.창후리 선착장 서북쪽 해안으로 돌출한 언덕 위에 직사각형으로 길게 자리잡고 있는 무태돈대는 인화돈대·광암돈대·귀등돈대·작성돈대와 함께 강화의 7보() 5진() 중 하나인 인화보()의 관리하에 감시소와 방어진지로서의 역할을 하였다. 남쪽으로 3,418m 거리에 망월돈대가 있고 북쪽으로 2,313m 거리에 인화돈대로 이어진다.돈대의 규모는 둘레 210m, 너비 2m로, 성벽은 안팎을 모두 화강암으로 쌓았고 잡석과 흙으로 안을 채웠다. 석축은 지형에 맞추어 쌓아서 경사진 부분이 많다. 현재는 동쪽과 서쪽의 성벽이 잘 남아 있고 남쪽 성벽은 하부는 원형이 남아 있으나 상부는 최근에 새로 쌓았다. 동쪽 성벽에 있는 성문은 남쪽 성벽에서 매우 가까운데, 안팎에 네모 반듯하게 다듬은 무사석() 두 단을 쌓고 그 안쪽으로 장대석 석축을 세운 위에 두껍고 긴 천장돌 6개를 덮었다.성안에는 해안을 향해 대포를 올려놓는 자리인 포좌()를 4곳 설치하였다. 이 포좌는 현재 서쪽 성벽에 2개, 서북쪽 모서리에 1개 남아 있고 나머지 하나는 서남쪽 모서리에 있었을 것으로 짐작되지만 성벽이 허물어져 확인할 수 없다. 남아 있는 3개의 포좌 중에서도 서북에 있는 것은 그 위치만 확인할 수 있는 정도이다.[네이버 지식백과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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