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문화재 천년기념물 문화재

경기 화성 용주사 대웅전후불탱화(경기도유형문화재 제16호)

雲高 金容捧 2015. 4. 20. 06:13

2015년4월16일 화요일

경기도 화성시 용주로(송산동) 용주사에 있는 조선시대의 불화로 비단 바탕에 채색. 세로 440㎝, 가로 350㎝.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6호. 석가불·아미타불·약사불의 삼불회를 한 화면에 그린 그림으로서 화면을 크게 삼등분하여 중앙에 석가모니불, 오른쪽에 아미타불, 왼쪽에 약사불을 배치하고 주위에 보살과 사천왕·제자·분신불()·동자 등 권속을 빽빽하게 배열하였다.석가모니불은 키형 광배(: 회화나 조각에서 인물의 성스러움을 드러내기 위해서 머리나 등의 뒤에 광명을 표현한 둥근 빛)를 등지고 연꽃대좌 위에 항마촉지인(: 왼손은 무릎 위에 두고 오른손은 내리어 땅을 가리키는 손 모양)을 결하고 결가부좌()하였다.무릎 아래로는 아난존자()와 가섭()이 시립하고 그 아래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연꽃을 들고 마주 보고 있다.아미타불은 구품인을 결하고 연꽃대좌 위에 결가부좌하였으며, 아래에는 정병을 든 백의관음과 세지보살이 협시하였다. 약사불은 왼손을 무릎 위에 놓아 약기를 들고 있고 오른손은 가슴으로 올려 수인을 취하고 있다.일광보살은 여의()를 들고, 월광보살은 합장을 하고 서 있다. 화면의 가장자리에는 사천왕을 배치하고 아미타불과 약사불의 옆에는 각각 2명의 보살을 배치하였다. 이중 금강저( : 악마를 깨뜨리는 무기)를 든 보살은 금강장보살()로 생각되지만 나머지 보살의 명칭은 알 수 없다.이 불화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마치 초상화를 그리듯 사실적으로 그린 입체적인 인물 표현과 명암법을 이용한 채색법이다. 이러한 기법은 19세기 후반 경기도 지역을 중심으로 널리 성행하였던 양식적 특징이다.이 불화에 보이는 원근법을 효과적으로 사용한 짜임새 있는 구도, 사실적인 인체 묘사 등은 1878년 청룡사 삼불회도를 비롯하여 1892년 봉은사 삼불회도, 1907년 양화사 삼불회도 등 19세기 말∼20세기 초 불화들과 동일한 양식적 특징을 보이고 있다. 1913년 용주사 신중도, 1916년 전등사 신중도, 1916년 정수사 신중도 등과도 맥을 같이하고 있다.이 작품에 대해서는 그동안 1790년에 김홍도가 제작하였다고 알려져 왔으나 이상과 같은 양식적 특징에 의해 볼 때 1910년대 용주사가 대대적으로 중창되었을 당시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네이버 지식백과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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