읍성(邑城) 산성(山城))

단양 적성

雲高 金容捧 2015. 3. 11. 08:07

2015년3월5일 목요일

충청북도 단성면 하방리 산3-1번지 일대 사적 제265호로 적성은 해발 323.7m의 성산(城山, 성재산) 정상부에 있는 산성이다. 소백산맥에서 북동쪽으로 뻗은 능선을 따라 성벽을 쌓았는데, 동쪽은 죽령천(竹嶺川), 서쪽은 단양천(丹陽川)이 북쪽으로 남한강에 합류하여 3면이 하천으로 둘러싸인 자연 해자를 이루고 있다. 남동쪽으로 4.5㎞ 떨어진 곳에는 공문성(貢文城)이 자리하고 있고, 서남쪽으로는 소이산봉수(所伊山烽燧)가 바라다 보인다. 산성의 주변에는 남한강의 상류 방면과 하류 방면으로 각각 고대 교통로가 나 있으며, 동서쪽으로는 벌령(伐嶺) 길이 트여 있다. 남한강 수로를 따라 영월과 충주 방면으로 진출이 용이하고, 강 건너 제천 방면으로 진출하기에도 유리한 교통의 요충지에 있는 산성이다.적성이 자리한 단양 지역은 신라시대에 적성현(赤城縣)이 위치하였다. 적성에 대해서는『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둘레가 1,768척이고 안에는 큰 우물 1개소가 있다”고 하면서, 원래 성산(城山), 성산성(城山城), 고성(古城) 등으로 불렸다고 기록되었다.『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朝鮮寶物古蹟調査資料)』에는 주민들이 민보성(民堡城), 농성(農城)이라 불렀다고 전한다.그러나 1978년에 발견된 단양신라적성비(丹陽新羅赤城碑, 국보 제198호)에는 이 산성을 적성(赤城)이라고 하였다. 비문의 내용에 의하여 이 산성이 법흥왕·진흥왕 때 신라가 죽령(竹嶺)을 넘어 한강의 상류 지역으로 진출하고 북쪽으로 세력을 팽창시키는 요충지로 이용되었음이 확인되었다. 성 안에서는 신라 토기와 기와 조각이 주로 확인되었지만 통일신라시대 토기 조각과 고려시대의 토기·청자 조각도 출토되어 고려시대까지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한민족대백과사전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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