雲高 金容捧 2024. 11. 13. 05:57

2024년10월21일 월요일

남한산성 행궁은 남한산성 안에 있는 조선시대의 행궁으로  2007년 6월 8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행궁은 1624년(인조 2) 7월에 착공하여 1626년 11월에 완공된 조선시대의 별궁(別宮) 또는 이궁(離宮)으로 후금(後金)의 침입에 대비해 백제 때의 토성을 석성으로 개축해 축조하였다 유사시에 임금이 임시로 머무르던 궁궐의 하나로, 병자호란 당시에는 임시 궁궐로 사용되었다 원래는 상궐(上闕) 73칸 하궐(下闕) 154칸 등 총 3단 227칸으로 이루어진 행궁이었으나 모두 불에 타서 없어지고 터만 남아있었으나 2002년 부터 2011년까지 복원이 진행되었다 《남한지(南漢誌)》에는 숙종(肅宗)영조(英祖)정조(正祖)가 영릉(寧陵)을 참배할 때 이곳에 머물렀다는 기록이 있는데 후대에는 지방관인 유수(留守)의 집무실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2001년 11월에는 이 행궁터 서쪽 바깥 담장과 안쪽 담장 사이에서 초기 백제 때의 토기조각이 발견되고 2개의 저장용 구덩이 시설이 확인됨으로써 남한산성이 백제 영토였음이 증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