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문화재 천년기념물 문화재

성주 세종대왕자태실(사적 제444호)

雲高 金容捧 2015. 4. 29. 09:48

2015년4월25일 토요일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인촌리에 있는 세종의 왕자 19명의 태실로 2003년 3월 6일 사적 제444호로 지정되었다. 세종대왕의 아들 8대군과 10군의 태실 18기와 세손(단종)의 태실 1기로 전열에 11기, 후열에 8기가 서 있다. 원래는 1438년(세종 20)에서 1442년까지 세워진 수양대군을 비롯하여 세종의 적서 18왕자와 단종 등 20여 기의 태실이 있었으나 수양대군이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를 찬탈하자 이에 반대하여 단종 복위를 도모하다가 죽은 금성대군과 한남군, 영풍군, 화의군 및 안평대군의 태와 장태비는 1457년(세조 3) 태봉 아래로 파내어 쓰러뜨려졌다. 이 5기의 기단석은 1975년 보수, 정화하면서 찾아 원자리에 앉혔다. 세조가 등극한 뒤 세조의 태비 앞에 홍윤성()이 글을 지어 비석으로 세웠으나 지금은 심하게 마모되어 판독이 거의 불가능하다.화강암으로 깎은 19기의 태실은 조선태실 의궤() 형식으로 지하에 석실을 만들고 그 안에 백자로 된 태호()를 넣었다. 태호 속에는 태항()과 태주()의 이름 및 생년월일을 음각한 지석()을 넣고 지상에는 기단, 간석, 옥개의 형식을 갖춘 석조물을 안치하는 한편 각왕자의 태실을 가리키는 표석을 세웠다.태실의 옥개 높이는 25㎝, 지름 1.6m, 둘레 3.2m이며 신석은 높이 60㎝, 지름 1.2m, 둘레 2.4m이다. 기단은 높이 45㎝, 지름 2.2m, 둘레 8.8m이고 태비의 높이는 90㎝, 너비는 35㎝이다. 이 태실에서 출토된 태호로 분청인화문 대접과 분청상감연화문 뚜껑 1벌, 명기()가 있는 지석 2점이 경북대학교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그 밖의 것은 1929년 왕가로 모두 옮겨갔다 [네이버 지식백과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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