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문화재 천년기념물 문화재

여수 흥국사중수사적비(전라남도유형문화재 제312호)

雲高 金容捧 2015. 4. 4. 15:00

2015년4월4일 토요일

전라남도 여수시 흥국사길 119 (중흥동 산190-1) 흥국사중수사적비는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312호로 1703년(숙종 29)에 건립한 흥국사 중수 사적비로, 비문은 최창대(崔昌大, 1669∼1720)가 짓고 글씨는 이진휴(李震休, 1657∼1710), 뒷면의 발문은 정동호(鄭東虎, 1665~1706)가 짓고 문세욱(文世郁)이 썼다. 그리고 중수에 참여 협조 한 140여명의 인명록이 음각으로 새겨져 있다 1703년(숙종 29)에 흥국사의 승려 성능(性能)이 최창대를 찾아가 비문을 청하여 이진휴로부터 전제와 비문 글씨를 받아 1703년(숙종 29) 6월에 비를 건립하였다. 뒷면의 발문은 흥국사 승려 혜일(慧日) 석철(碩哲)이 주도하여 정동호에게 발문을 청하였고, 참여 협조한 시주질과 삼강록 등 140여 명의 인명록을 새겼다. 비문 건립 당시 흥국사는 순천도호부에 속한 지역이었고, 흥국사에 주진하는 의승수군은 전라좌수영의 관할을 받았다. 1897년(광무 1)에 여수군이 신설되면서 여수에 속하게 되었다 흥국사 사적비의 특징은 조선시대 후기에 건립된 사찰 사적비로 귀부와 이수를 갖추고 있는 점, 전체 높이 270cm 규모의 대형 석비라는 점, 비문을 지은 최창대와 글씨를 쓴 이진휴가 삼품 이상의 문관직에 있던 당대 명문장가와 명필이라는 점, 발문과 140여명의 참여인명록이 있다는 점, 사찰의 사적비이지만 유가 문장가가 비문과 발문을 지었다는 점, 흥국사의 연혁과 중수 사실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다는 점 등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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