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 인촌 김성수氏고택(전라북도기념물 제39호)
2015년3월15일 일요일
전북 고창군 부안면 봉암리 435번지 인촌 김성수氏의 생가 대한민국 제2대 부통령이었던 인촌 김성수(1891∼1955) 선생이 태어난 곳으로 김성수(金性洙, 1891년 10월 11일 ~ 1955년 2월 18일)는 일제 강점기의 교육인 겸 언론인·기업인·민족운동가[주 1] 이자, 대한민국의 정치인, 언론인, 교육인, 서예가이다. 전라북도 고창 출생으로, 부안 줄포에서 자랐다. 자는 판석(判錫), 아호는 인촌(仁村), 본관은 울산이다 1914년 와세다 대학교 정경학부를 졸업하였다. 귀국 후 1915년 중앙고등보통학교를 인수하여 학교장을 지내는 등 교육 활동을 하였다. 1919년 10월 경성방직을 설립하여 운영하였다. 경성방직은 초기에 경영상황이 어려워서 늘 사재를 털어서 보충해 나가는 중에 1926년 이후에 동생 김연수가 경영에 능하고 재능이 있어서 성장시겼다. 김성수는 경성방직을 운영하며 물산장려운동에 참여하였고, 1920년에는 양기탁, 유근, 장덕수등과 동아일보를 설립하였다.8.15 광복 이후에는 한국민주당 조직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봉대운동 등에 참여한 뒤 김구, 조소앙 등과 함께 신탁통치반대운동를 주관하였다. 1949년 민주국민당의 최고위원이 되었고, 한국 전쟁 기간인 1951년 5월부터 1952년 8월까지 대한민국 제2대 부통령을 역임하였다. 그러나, 이승만이 부산 정치 파동으로 헌법을 개정하여 재선을 추진하자 부통령직을 사임하였다. 1954년 이승만의 장기 집권에 반대하는 호헌동지회에 참여하여 통합 야당인 민주당의 창립 준비에 관여하였고, 1955년 2월 18일 병으로 사망하였다. 임종 직전 로마 가톨릭교회의 세례와 병자성사를 받았다.사후 건국공로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한편, 2002년 2월 28일 대한민국 국회의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모임과 광복회가 선정한 친일파 708인 명단에 수록되었고,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4인 명단,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언론계 친일파로 수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