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 자규루(강원도 유형문화재 제26호)
2015년3월4일 수요일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에 외롭게 서있는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26호 자규루는 단종의 애절한 사연을 간직한 누각이다. 영월군에는 장릉내의 정자와 영월향교, 창절서원의 문루까지 합하여 8곳에 누정이 남아 있다. 일반적으로 누정은 시인 묵객들이 모여 산수자연을 노래하고 시를 짓기도 하며, 마을의 유지들이 모여 시회를 열거나 모임을 갖던 장소이나, 영월군에서의 정자는 다른 고장의 경우와는 달리 충절의 성격을 강하게 지니고 있는 특징을 갖는다.영월군의 누정은 군내의 다른 유적과 마찬가지로 단종과 많은 관련을 맺고 있다. 단종이 기거하다 사약을 받았던 관풍헌, 직접 누각에 올라 자규시를 읊었던 자규루, 단종을 은밀하게 모시기 위해 원호가 만들었던 관란정, 단종 사후에 단종과 관련하여 건축된 배견루와 배견정 등은 모두가 단종이 영월에 유배되었다가 비운의 죽음을 당한 데 기인하여 건축된 누정들이다. 이러한 누정들은 당대의 역사성과 결부되어 중앙 조정에서의 정치적 이해에 따른 충절에 대한 강조를 할 때마다 부각이 되곤 하였다. 영월군민들의 정자에 대한 보존의식은 각별한 것으로, 단종이 복원된 이후 중앙에서의 보존대책이 강구되었고 그 때마다 영월군민들이 건축에 앞장을 서게 되었다.자규루는 영월읍내 중심가에 있는 관풍헌 동쪽 약 50m 쯤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관풍헌은 조선초기부터 동헌 내 객사로 사용되던 건축물이다. 현재 담 안에는 4채의 건물이 남아 있으며, 동쪽으로 관풍헌, 약사전, 법당 건물의 순서로 배치되어 있다. 자규루는 1428년(조선 세종 10년)군수 신숙근이 관풍헌을 건립하면서 그 전면에 일명 매죽루를 세웠는데, 그 후 단종이 영월에 유배되어 이 누각에 올라 자신의 고뇌를 자규시로 읊은 것이 계기가 되어 자규루로 명칭이 바뀌었다고 한다. 그 후 이 누각은 1605년(조선 선조 38년) 대홍수로 폐허가 되었으나, 강원도 관찰사 윤사국(1728~1809)이 1791년(조선 정조15년)에 영월을 순찰할 때 옛터를 찾아 중건하고 단종의 시를 봉안하면서 그 맥을 이어가게 되었다. 누각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5량집이며, 자연석 기단에 자연석 초석위에 원형기둥으로 누하주를 세우고 누마루를 꾸민 중층 문루로서, 좌측 첫째 칸에 나무계단을 설치하여 오를 수 있도록 하였다. 기단에서 약 2m 높이의 누마루는 우물마루이며 누하주 위에 장귀틀을 놓고 그 위로 누상주를 올렸으며, 계자난간으로 마감하였다. 공포는 익공계로 무출목 초익공집이며 쇠서는 물익공 형태로 되어있으며, 내부는 연등천정으로 되어있다강원일보에서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