雲高 金容捧 2015. 3. 6. 15:12

2015년3월1일 일요일

공주 갑사에 있는 공우탑은 계곡변 기슭에 특이한 이름을 가진 삼층석탑이 있다. 이 탑은 본래 동쪽 산중에 있던 남사자암이란 터에 있던 것을 옮긴 것으로 ‘공우탑(功牛塔)’이라 한다. 이 탑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한다 조선시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왜적들의 약탈질은 극에 달했으나 갑사는 다행히 피해를 입지 않았다. 하지만 정유년에 다시 침입한 왜적들에 의해 절은 분탕질을 당하고 모두 불타버렸다. 그러자 빈 절터에 몇몇 스님들이 남아 다시 불사를 일으키려 하였으나 긴 전쟁과 거듭된 흉년으로 절을 다시 세우기란 도저히 불가능했다. 결국 스님들은 부처님에게 도움을 청하는 기도를 올렸는데, 어느 날 한 스님의 꿈에 소가 나타나 자신이 도와주겠다고 했다. 꿈에서 깨어난 스님이 절 마당을 내다보니, 꿈에서 본 커다란 소 한 마리가 서 있었다 이로부터 소는 어디선가 절을 짓는데 필요한 재목과 기와와 양식 등을 마당에 가득 실어왔고, 마침내 절은 완공되었다. 그러나 힘을 다 쏟고 지쳐버린 소는 그만 죽고 말았다. 이에 스님들은 소의 넋을 위로하고 공덕을 기리기 위해 그 자리에 소를 묻고 탑을 세워 공우탑이라 하였다고 한다.탑은 장식에 해당하는 상륜부가 없어지고 기단부는 묻힌 3층 석탑으로 1층 탑신에 ‘와탑기립 인도우합(臥塔起立 人道偶合)’, ‘삼혜을을 궐공거갑(三兮乙乙 厥功居甲)’이란 명문이 새겨져 있다. “쓰러진 탑을 일으켜 세우니 인도(人道)에 우연히 합치되었네. 세 번을 수고하고 수고했으니 그 공이 으뜸이라”란 의미이며, 2층에는 ‘우탑(牛塔)’, 3층에는 ‘공(功)’자가 각각 음각 되어 있다 소는 농경생활에 바탕을 둔 우리 민족에게 단순한 가축 이상의 특별한 의미를 지닌 동물이다. 전통사회에서 소는 한집안 식구처럼 생각하여 ‘생구(生口)’라 불렀으니, 생구는 한집에 사는 하인이나 종을 일컫는 말로, 소를 사람으로 대접하여 줄 만큼 소중히 여긴 것이다. 한때는 중요한 학자금 역할을 하여 우골탑이라 불렀을 만큼 농촌에서는 가장 중요한 재산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쇠고기 수입 개방으로 소값 폭락이 이어져 마침내 젖소 가격이 강아지 값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한다. 답답한 경제상황속 기축년에 바라본 기구한 소 가치의 유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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