릉(稜) 고분 (古墳)

김해 대성동 고분

雲高 金容捧 2014. 8. 1. 07:17

2014년7월30일 수요일

경남 김해시 대성동에 있는 3~5세기 무렵 금관가야(金官伽倻)시대의 여러 무덤 유적. 사적 제341호. 지정면적 2만 381m2. 밭을 갈다가 유구(遺構) 일부가 노출됨으로써 발굴조사를 서두르게 되었다. 경성대학박물관이 1990년 6~7월, 1990년 9월~1991년 4월 등 2차에 걸쳐 발굴조사하였다. 1차에서는 4세기 말~5세기 초 본가야(금관가야)의 왕급 무덤 2기(基)를, 2차에서는 3세기 후반~5세기 전반에 이르는 다수의 왕후묘(王侯墓)가 포함된 37기의 각종 분묘를 발굴조사하여, 한국 고대사에서 공백으로 남은 4세기 전후의 역사를 재구성하는 데 귀중한 자료를 얻게 되었다. 조사된 분묘는 덧널무덤[木槨墓] 20기, 널무덤[木棺墓] 9기, 돌방무덤[石室墳] 8기, 독무덤[甕棺墓] 2기 등 39기이며, 이 중 무덤의 너비 길이가 8m 전후나 되는 초대형의 것이 포함된 3세기 후반~5세기 전반의 왕후 덧널무덤에 관심이 집중되었다. 한편 20기의 덧널무덤들은 연대 추이에 따라 각기 다른 구조적 특징이 나타날 뿐만 아니라, 이들 덧널무덤이 한대(漢代) 덧널무덤, 낙랑 덧널무덤, 남시베리아의 파지리크고분, 몽골 북부의 노인울라고분 등과 같은 북방 유목민족의 덧널무덤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출토된 유물 중에는 부여국에서 전해졌을 가능성이 큰 동복(銅鍑), 이제까지 5세기 이후의 고분에서만 출토된 기승용(騎乘用) 마구와 갑주 등이 4세기 중엽의 고분에서 출토되었다는 사실로 미루어, 가야지역에서는 늦어도 4세기 중엽에 기마술이 보급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 밖에 각종 무구류를 비롯한 다른 유물에서도 북방문화의 요소가 엿보여, 대성동고분군은 가야와 북방문화의 상관관계의 규명을 학계의 과제로 제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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