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 정수사
2013년3월17일 일요일
강화도 마니산 아래 정수사
강화도 마니산(摩尼山)의 동남쪽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정수사는 639년(신라 선덕여왕 8) 회정선사(懷正禪師; 1678~1738)가 마니산의 참성단(塹星壇)을 참배한 다음 이곳의 지세가 불제자의 삼매 정수(三昧精修)에 적당하다고 판단되어 정수사(精修寺)를 창건하였다. 그 후 1426년(세종 8) 함허대사(涵虛大師; 1376~1435)가 다시 지었는데 법당 서쪽에서 맑은 샘이 솟아나는 것을 보고 이름을 정수사라 고쳤다고 한다. 강화 정수사 법당은 석가모니 불상을 모신 대웅보전으로 1957년 해체・수리하여 보수 공사할 때 1689년(숙종 15) 당시의 상량문이 발견되었으며, 1423년(세종 5)에 새로 고쳐 지은 것으로 되어 있다.
정수사 법당의 규모는 정면 3칸・측면 4칸이지만 원래는 툇마루가 없이 정면과 측면이 3칸 건물이었던 것으로 추정한다. 지붕은 측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이다. 건립 당시의 세부 형식을 제일 잘 파악할 수 있는 부분은 건물 후면의 공포(栱包)인데 조선 전기에 속하는 주심포(柱心包) 집의 수법을 따르고 있다. 내부는 바닥에 마루를 깔고 천장은 중앙을 우물천장, 그 주위는 빗천장으로 만들었는데 이것은 후세에 추가된 것이다. 이 때문에 지붕 밑의 가구재(架構材)들은 보이지 않는다. 건물 측면에는 고주(高柱; 한옥에서 여러 기둥 가운데 특별히 높게 세운 기둥으로 대청마루의 한 가운데에 세운 것을 이름) 2개를 세워서 그것으로 종량(宗樑; 두 겹으로 얹는 보에서 마룻대가 되는 보)을 받치도록 하였으며 건물 앞뒤 기둥에 걸친 옥내 대들보는 그 양 끝이 그대로 길게 외부의 출목(出目)까지 뻗쳐 나와 공포와 함께 그 일부를 구성하고 있다.
감상 포인트; 앞쪽 창호의 가운데 문은 꽃병에 꽃을 꽂은 듯 화려한 조각을 새겨 뛰어난 솜씨를 엿보게 한다. 현존하는 사찰의 꽃살문 가운데 뛰어난 것은 논산 쌍계사 대웅전(보물 408호), 영주 성혈사 나한전(보물 832호), 부산 범어사 대웅전(보물 434호), 예천 용문사 대장전(보물 145호), 공주 동학사 대웅전, 칠곡 송림사 대웅전, 그리고 부안 내소사 대웅보전(보물 291호)의 꽃살문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최고의 걸작품은 16세기경에 만들어진 내소사 대웅보전의 꽃살문이다. 현재는 단청이 많이 퇴색되어 화려함을 잃었지만 문양의 다양한 변화와 조화, 그리고 뛰어난 조각 솜씨가 돋보인다.
이야기; 궁궐이나 민가의 ‘亞(아)’자문, 띠살문 등이 단아하고 균형 있는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사찰 법당의 문살은 매우 화려하다. 대웅전이나 극락전, 비로전과 같은 중심 법당의 문은 물론이고 관음전, 미륵전 등 보살전의 문에 이르기까지 사찰 법당 문의 대부분은 빗살문[살을 엇비슷하게 어긋매껴 촘촘히 짜서 만든 문]이나 솟을빗살문 또는 솟을빗꽃살문 등의 형식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법당의 문살 장식은 꽃이 주종을 이루는데 꽃의 종류를 보면 연꽃을 비롯하여 모란・국화・해바라기 또는 백일홍 모양의 꽃도 있으며, 때로 정확한 이름을 알 수 없는 관념적인 형태의 꽃들도 보인다. 꽃살문은 살대에 이런 꽃들을 새긴 문살을 사방 연속으로 짜 맞춘 구조이며, 이때 꽃은 대개 여섯 장의 꽃잎으로 되어 있지만 때로 네 장인 것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