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여행(旅行)

보성 백범 김구선생은거지

雲高 金容捧 2022. 9. 6. 17:59

2022년9월1일 목요일

백범 김구(1876-1949)선생은 조국의 완전한 독립과 통일을 위해 한 평생을 바쳤다 백범김구선생은 1894년 동학농민전쟁 때 선봉에 섰다 사람은 누구나 평등하다'고 믿었다. '아기 접주'라는 별명도 얻었다. 교육자로서 애국 계몽운동도 펼쳤다. 신민회 사건에 연루돼 15년 형을 선고받고, 4년간 옥살이도 했다 1919년 3·1운동 이후 중국 상하이에 임시정부가 들어서자 '문지기'를 자처했다. 경무국장을 맡았다. 이어 국무령, 주석으로 일하며 항일에 앞장섰다. 한인애국단을 조직, 일제의 심장에 비수를 꽂은 이봉창·윤봉길 의거를 주도했다. 한국광복군을 창설, 미국·영국 등 연합군과 공동작전도 폈다 해방이 되자 11월 조국에 돌아와 신탁통치 반대운동을 이끌었다. 국토와 민족의 분단을 저지하고 통일정부를 수립하기 위한 남북협상을 추진했다. 하지만 자주 독립국가, 통일정부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 친일, 반민족·반통일 세력의 흉탄을 맞았다. 1949년 6월 26일의 일이었다 전라남도 보성군 득량면 삼정리 쇠실마을이다. 마을 입구 몇 군데에 '백범 김구 선생 은거지'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쇠실마을은 안동 김씨 집성촌이다. 한때 500~600명이 살았다. 2번국도 너머의 넓은 땅을 경작하는 '부자'들이었다. 지금은 50여 가구, 100여 명이 살고 있다. 넉넉한 건 예나 지금이나 매한가지다 김선생이 쇠실마을을 다시 찾은 건 1946년 9월, 선생의 나이 71살 때였다. 헤어짐의 아쉬움을 담은 한시를 남기고 떠난 지 48년 만이었다. 이름도 '김두호'가 아닌, 민족의 지도자 백범 김구였다 쇠실마을에 머문 기간은 두 차례, 50여 일이었다. 일생에서 그다지 길지 않는 시간이었다. 그럼에도 짧은 인연을 소중히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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