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문화재 천년기념물 문화재

장흥 부춘정

雲高 金容捧 2020. 11. 7. 06:00

2020년10월

부춘정원림은 전남 장흥군 부산면 부춘길 79(부춘리 365)있다 부춘정은 전라남도 기념물 제67호로 남평문씨 문희개(文希凱 : 호 청영(淸潁) 1550 ~1610년)가 정유재란 뒤 고향에 돌아와 세운 것으로 창건 당시에는 자신의 호를 따서 청영정(淸潁亭)이라 불렀다. 문희개는 임진왜란 때 의병으로 참전하였으며 그공적을 인정받아 고창현감으로 발탁되어 정유재란 때는 수성(守城)에 공을 세운바 있다.청영정은 헌종 4년경(1838)에 웅치에 살았던 청풍(淸風)김씨 김기성(金基成 1801 ~1869)이 매입하여 오늘과 같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2실과 툇마루가 있는 팔작지붕으로 개축하고 이름도 청풍김씨 집성촌인 '부춘'에서 따와 부춘정으로 고쳤다. 정자(亭子)의 서쪽에는 예양강(탐진강)이 인접하여 남쪽으로 흘러간다.정자아래에는 '용호(龍湖)'와 '동강(桐江)이라는 글씨가 바위에 음각되어 있는데 '용호(龍湖)는 조선중기 8대 문장가이며 당대 최고의 시문과 글씨를 자랑하는 옥봉(玉峰) 백광훈(白光勳 1537 ~ 1582)이 썼다고 한다. 용호(龍湖)는 옥봉(玉峰)이 호(號)를 지어준 청영(淸暎) 문희개(文希凱)의 아들인 용호(龍湖) 문익명(文益明)을 뜻한다. 동강(桐江)은 김기성의 호(號)이며 스스로 '동강처사(桐江處士)'라 일컬었다.부춘(富春)이란 지명은 본래 중국 한나라 때 엄자릉(嚴子陵)이란 사내와 관련된 지명이다. 그는 불의한 현실을 개탄하여 초야에 뭍힌 뒤 광무제(光武帝)의 거듭된 부름을 물리치고, 부춘산(富春山) 칠리탄(七里灘)이란 곳에서 평생 밭 갈고 낚시 하다 세상을 등진 선비였다. 그 칠리탄이 바로 '용호(龍湖)' '용연(龍淵)' '용강(龍江)'이라고도 불리웠다.부춘정 아래 옥봉 선생이 쓴 ‘龍湖’ 바위에는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하듯 ‘칠리평탄(七里平灘) 일사청풍(一絲淸風)’이란 여덟 글자가 따로 세겨져 있다. ‘7리에 걸친 평평한 여울에 한 올의 맑은 바람’이란 뜻으로 엄자릉의 부춘산 칠리탄을 염두에 두고 쓴 글이다. 그 뒷쪽에는 조선 말기의 문인인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이 '삼공불환차강산(三公不換此江山)’이란 글을 써놓았는데, 이글 또한 광무제와 엄자릉의 이야기에서 뿌리를 두고 있는데 이 말도 되세겨볼 만하다. ‘삼공의 벼슬과도 이 강산을 바꾸지는 않겠다’는 뜻으로, 얼마나 뛰어난 풍광이면 정승의 벼슬과도 바꾸지 않는다고 했을까?... (삼공은 정승벼슬의 별칭이다.) 정자의 뒷편에는 문희개가 임금을 그리워하며 매일 북쪽을 향해 절을 했다는 망군대비(望君臺碑)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