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國寶) 보물(寶物)

경주 첨성대(국보제31호)

雲高 金容捧 2019. 11. 1. 18:26

2019년10월12일 토요일

첨성대는 경북 경주시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시기의 천문관측시설로 국보 제31호이며 높이 9.5m이다 첨성대가 위치한 곳은 옛날에는 경주부(慶州府) 남쪽 월남리(月南里)라고 하였고, 계림(鷄林)의 북방 약 150∼200m, 내물왕릉 동북방 약 300m 되는 곳이다. 이 근방을 속칭 비두골이라고도 한다 첨성대는 『삼국유사』기이(紀異) 권2의 별기(別記)에 “이 왕대(王代)에 돌을 다듬어서 첨성대를 쌓았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신라 선덕여왕 때(재위 632∼647)에 축조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 같은 책 왕력(王曆) 제1에 신라 제17대 내물마립간(奈勿麻立干) 이야기 끝에 “능은 점성대(占星臺) 서남에 있다.”라는 기사가 있는데 현재의 내물왕릉과 첨성대의 위치 관계와 잘 부합된다. 이 기록에서 첨성대가 별명으로 점성대라고 불렸던 것을 알 수 있다  첨성대의 기능에 대해서는 조선 말기 이후 일제강점기까지도 천문대(天文臺), 즉 천문관측을 하는 곳으로 이해되었다. 그런데 광복 이후에 갑자기 이에 대한 이설이 제기되며, 제단(祭壇)·기념물·불교관계 건축물 등의 여러 가지 설과 이견이 속출되었다. 이런 설에 대하여 종전의 전통적인 입장에서 천문대로 해석하는 연구도 물론 진행되었다 이설들이 나온 이유의 하나는 현존하는 첨성대가 평지(平地)에 있다는 것, 첨성대 자체의 구조상 그 위로 오르내리는 통로가 매우 불편하다는 점 등이다. 그러나 당시의 역사적 환경은 나라마다 다른 첨성대 또는 점성대를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첨성대의 구조는 아래의 기단부(基壇部), 그 위의 술병형의 원통부(圓筒部), 다시 그 위의 정자석(井字石) 정상부(頂上部) 등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땅속에는 잡석(雜石)과 목침(木枕) 크기의 받침돌, 그리고 기단부 서쪽으로는 일렬로 자연석이 놓여 있다. 이 기초를 다진 돌 위에 2단으로 된 기단석이 놓여 있다 기단부는 정방형으로 한 변의 길이가 하단은 5.36m, 상단은 5.18m이며, 두 단이 다 높이가 39.5㎝로서 두 단을 합쳐서 79㎝의 높이가 된다. 이 기단부는 남쪽 변이 정남(正南)에서 동쪽으로 19° 돌아서 있다 기단 위의 원통부는 높이 약 30㎝인 부채꼴의 돌로 27단을 쌓아올렸는데, 27단의 높이는 8.08m이며, 최하단의 원둘레는 16m, 제14단의 둘레는 11.7m, 최상부인 제27단의 둘레는 9.2m이다 제13∼15단에 걸쳐서 정남에서 동쪽으로 약 16°가 되는 방향을 향하여 한 변이 약 95㎝인 정방형의 창구(窓口)가 나 있다. 이 창구의 아랫변의 돌은 대형의 평판석(平板石)으로 되어 있어서 내부의 면적을 크게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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