읍성(邑城) 산성(山城))

제주 읍성

雲高 金容捧 2016. 5. 30. 05:52

2016년5월25일 수요일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제주목사가 근무하던 제주목 관아와 그 주변을 둘러싸던 성으로 제주읍성은 1105년(숙종 10) 탐라군이 설치되면서 축성되었다. 당시의 읍성은 이미 존재하고 있던 탐라국 시대의 성곽을 활용하여 축성된 것으로 보인다 제주읍성은 행정적인 목적 외에도 군사적인 기능도 지니고 있었다. 유사시에 적의 침입으로부터 읍성을 보호해야 했기 때문에 성곽의 입지적 조건으로 자연적 지형이 매우 중요하게 고려되었다 제주읍성은 본래 동쪽의 산지천, 서쪽의 병문천 사이에 성을 쌓아서 적의 침입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였다. 그러나 성 안에 우물이 없어 백성들이 큰 불편을 느끼자 1565년(중종 20) 곽흘 제주목사가 성을 가락천 밖으로까지 넓혀서 축성하였다. 이때부터 산지천과 가락천이 제주읍성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1599년(선조 32)에는 성윤문 제주목사가 초루(: 궁문, 성문 따위의 바깥문 위에 지은 다락집) 및 남수각·북수각·제어각 등을 설치하였다. 하지만 겨울철에 공사가 이루어져 작업을 하다 죽은 사람이 10명 중 2~3명에 이르러 제주도민들은 제주읍성을 원축성()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1652년(효종 3) 8월에는 폭우로 인하여 남수구와 북수구가 무너지자, 이원진 제주목사가 중수를 하면서 위에 정자를 세워 공진루()라 이름 붙였다 제주읍성을 동쪽으로 더 늘려 쌓은 이후, 폭우 때마다 산지천이 범람하여 민가가 침수되는 피해가 계속 발생하자 1780년(정조 4)에 김영수 제주목사는 옛 성터를 따라 길이 551보, 높이 9척의 간성()을 쌓았다. 그리고 간성 남북에 두 개의 문을 개설하여 남문을 소민문(), 북문을 수복문()이라 하였다 1847년(헌종 13)에는 이의식 제주목사가 북수구의 성을 좀더 북쪽으로 퇴축하고 성 위에 천일정()을 세웠으며, 수복문을 중인문()으로 개편하였다

 

 

 

 

 

 

 

 

 

 

 

 

 

 

 

 

 

 

 

'읍성(邑城) 산성(山城))'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구미 금오산성  (0) 2016.11.22
여주 파사산성(사적 제251호)  (0) 2016.07.29
보령 보령성곽(보령성지)  (0) 2016.05.14
보령 수영성(사적 제501호)  (0) 2016.05.14
홍성 흥주(홍성)읍성  (0) 2016.0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