릉(稜) 고분 (古墳)

경기 양주 서오릉내 대빈묘

雲高 金容捧 2015. 4. 27. 06:31

2015년4월19일 일요일

 

대빈묘(大嬪墓)는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용두동서오릉 경내에 있는 조선의 제19대 숙종후궁 희빈 장씨무덤이다 조선의 제19대 숙종(肅宗)의 후궁이자 계비이며, 경종(景宗)의 생모인 희빈 장씨(禧嬪 張氏)의 무덤으로 정식 묘호는 옥산부대빈묘이다.1701년 무고의 옥(=신사옥사)으로 자진한 희빈 장씨의 본래 묘호는 희빈장씨묘였으나, 경종2년에 신임사화노론을 정계에서 축출한 경종이 어머니 장씨를 옥산부대빈으로 추존하여[2] 묘호가 옥산부대빈묘로 교체되었다.[3]이후 영조 29년에 영조가 사친을 왕후로 추숭할 뜻을 포기하고 본래의 작호에 두 글자의 시호만이라도 더해주길 간청하니[4][5] 이에 숙빈 최씨는 화경의 시호를 얻었으며 영조는 숙빈최씨묘를 원(園)으로 봉원(封園)하여 장씨의 무덤보다 격을 높이는 것으로 스스로를 위로했다.[6] 조선시대에 원이 쓰인 것은 이때가 두 번째이다.[주석 1] 2년 뒤, 영조는 대역죄인인 여천군 이증의 집에 원종(=정원대원군)의 사친인 인빈 김씨의 신주가 모셔져 있는 것이 온당치 않다며 옮기게 하였다가 다시 두 왕자의 신주와 함께 한 신당에서 봉사를 받는 것도 온당치 않다고 하여 따로 사당을 세우도록 하였는데[7] 이때 이 사당을 봉궁[주석 2]하면서 인빈 김씨에게도 두 글자의 시호를 더하고 묘 역시 봉원하였다.[8] 이후 영조40년, 영조가 각별히 총애하던 후궁 영빈 이씨가 사망하자 영조는 훗날 정빈 이씨(효장세자의 사친)의 묘와 영빈 이씨의 묘를 봉원토록 하라는 글을 적어 해조에 간수토록 하고[9] 영빈 이씨의 무덤만 원의 형태로 조성하여 의열원이라 불렀다. 이로 인해 1등 후궁 혹은 세자의 사친의 무덤 역시 봉원될 조짐이 있었으나, 영조의 사후에 즉위한 정조가 자신의 법부로서 왕으로 추숭한 진종(효장세자)의 사친인 정빈 이씨의 무덤만 봉원하고, 왕의 사친도 아닌 영빈 이씨의 무덤을 함께 봉원하는 것은 가당치 않다고 하여 다시 묘로 격을 내려버림으로써 이때부터 선왕의 후궁으로서 왕의 사친이 된 여인의 무덤은 봉원하는 것이 제도가 되었다. 실제로는 영조가 숙빈 최씨의 묘를 봉원하기에 앞서 자신의 부모를 높이기 전에 3대조를 먼저 혹은 함께 높인다는 유교의 법칙에 따라 선왕인 경종의 사친의 무덤인 대빈묘가 먼저 봉원되었어야 마땅하지만 영조가 장씨에게 감정이 나빴으며 당시 집권당도 노론이었기에 당시에는 물론 이후 인빈 김씨의 묘와 정빈 이씨의 묘가 봉원될 때도 누락되어 그 후로도 묘로 남았다. 현대 사전에는 고종시대의 기준에 맞춰 원(園)을 세자 부부와 왕의 사친의 무덤으로 간략하게 정의하고 있는데, 이것이 오인되어 조선 초기부터 원이 존재하여 세자 부부의 무덤으로 쓰였으며 이후 왕의 사친의 무덤으로 쓰였지만 장씨는 죄인이기에 묘로 남은 것이라고 잘못 해석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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