릉(稜) 고분 (古墳)

경기 화성 융릉(사적 제206호)

雲高 金容捧 2015. 4. 20. 05:44

2015년4월16일 금요일

경기도 화성시 효행로(안녕동)에 있는 조선시대의 능으로 사적 제206호. 장조()와 그의 비 헌경왕후()의 능이다. 근처에 위치한 건릉()과 함께 사적 제206호로 지정되어 있다.장조는 1735년(영조 11) 창경궁에서 탄생해 그 이듬해에 세자에 책봉되고, 1762년 28세 때 창경궁에서 죽었는데, 영조가 뒤에 사도()라는 시호를 내렸다. 그 뒤 정조가 즉위하자 장헌세자()라 하고 고종 때 장조로 추존되었다가 1899년 의황제()로 다시 추존되었다.헌경왕후는 영의정 홍봉한()의 딸로서 1744년 세자빈에 간택되었다가 세자가 죽은 뒤 1762년 혜빈()의 호를 받았다. 1776년(정조 즉위년) 아들 정조가 즉위하자 궁호가 혜경()으로 올랐다. 1815년(순조 15) 80세로 창경궁에서 죽었는데, 1899년 의황후()로 추존되었다.융릉은 원래 경기도 양주시의 배봉산()에 있었던 영우원()을 수원의 옛 도읍 뒤의 화산()으로 옮겨 현륭원()이라 하였다. 정조는 현륭원을 마련할 때 온갖 정성을 기울였다. 그 결과 조선시대의 어느 원보다도 후하고 창의적인 상설()을 하였다.능상설은 병석()을 두르고 인석()은 화뢰형()으로 하고 문무석인을 세웠다. 장명등은 전기의 8각 장명등과 숙종·영조 연간에 등장한 4각 장명등의 양식을 합한 새로운 양식으로 만들어 세웠다.석인도 예전에는 가슴까지 파묻혀 있던 목이 위로 나와 있어 시원한 분위기를 나타내는 등 조각 수법이 사실적이다. 능의 뒤에는 곡장()을 돌렸다. 19세기 이후의 능석물 양식()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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