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사찰

옥과 관음사

雲高 金容捧 2014. 9. 20. 07:15

2014년9월14일 일요일

관음사는 1729년(영조5) 백매선사가 쓴 관음사 사적에 의하면 백제 분서왕3년(300) 성덕보살이 낙안포(지금의 보성 벌교)에서 금동관세음보살상을 모셔다 절을 짓고 이름을 관음사라 하였다고 한데서 비롯된다. 그리고 창건 뒤 성공性空스님이 성덕의 상을 만들려다가 생각을 바꿔 관음상을 모시고 성덕산 관음사라 했다고 전한다. 관음사는 조선시대 이전의 기록에서는 보이지 않고 『동국여지승람』에서 성덕산 관음사를 기록하고 있어 늦어도 고려시대에는 관음사가 존재하였음을 알 수 있다. 동국여지승람과 『범우고』에는 “전라남도 옥과 성덕산에 있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가람고』는 “현의 남쪽 30리에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태고사사법』에는 “곡성군 화면 성덕산에 있고 대본산 송광사의 말사”라고 적혀 있다. 관음사의 연혁을 보면 고려시대에는 1374년 (공민왕 23)에 원통전을 중수하는 등의 5중창을 하였으며, 선원을 중심으로 큰스님이 많이 배출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임란 때 피해를 입고 거의 폐허화되었으나 신희. 담원. 담정 세 스님만은 끝까지 절을 지켰다. 1604년(선조 37) 5년에 걸쳐 모든 건물을 복원하였다. 관음상을 봉안하고 있던 원통전은 임진왜란의 화를 입지 않았다. 전쟁이 끝난 후 1611년(광해군 3), 1612년에도 중창하였고, 1636(인조 14)과 1718년(숙종 44)에는 원통전을 중수하였으며, 수각루인 금랑각을 지었다. 근대에 들어 1832년(순조 32)에 큰 홍수로 전각의 거의 반이 쓸려 무너졌고, 금랑각처럼 남아 있는 건물도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 금랑각은 그렇게 오래 방치하다가 1936년 청운스님이 중건하였는데 그 내용이 금랑각중수기에 기록되어 있다. 이 중수기는 근대의 고승인 한영 정호(漢英 鼎鎬: 1870~1948)스님이 이곳에 잠시 머물면서 당시 주지인 수용(袖龍)스님의 부탁으로 지은 것이다. 1912년 영담화상이 전체 가람을 중수하였으나 6.25동란으로 모두 불탔다. 이곳은 빨치산들의 은신처가 된다 하여 토벌군의 방화로 대부분의 건물이 불탔다. 이 때 국보로 지정되어 있던 원통전(273호)과 금동관음보살상(274호)이 소실되었다. 1954년 대은암의 건물을 옮겨와 원통전을 재건하였다. 1982년에는 지장전, 서원당, 금강문을 복원하였으며, 지금도 의욕적인 불사를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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